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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Fleabag) 리뷰: 고백과 농담 사이 — 자기파괴에서 애도로, 그리고 사랑으로

by snile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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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abag

 

코미디 드라마4차벽 브레이킹여성 서사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드라마 #26

작품 개요

원제: Fleabag · 방영: 2016–2019(시즌 1–2) · 국가: 영국(BBC/아마존) · 장르: 코미디·드라마 · 형식: 시즌당 6화, 각 25~30분 내외

플리백은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한 여성의 고백체 드라마다. 그녀는 관객(=카메라)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농담, 눈짓, 표정, 순간적인 시선 돌리기—그 모든 것이 방어기제이자 구조 신호다. 웃음으로 포장된 장면들이 끝나면, 남는 것은 상실과 죄책,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욕망이다.

왜 지금, 왜 플리백인가

소셜 미디어 시대의 1인칭 카메라, 셀프 내러티브, 그리고 관계의 피로. 플리백은 “웃기지만 슬픈” 톤으로 우리 세대의 언어를 캡처한다.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속삭일 때 관객은 공범이 된다. 이 공모감은 곧 안도감이자 함정이다. 그녀가 가장 외로운 순간, 우리에게도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믿음—그러나 카메라가 아무것도 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줄거리(시즌 1·2 핵심)

시즌 1은 자기파괴적 유머로 삶을 견디는 ‘나’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런던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지만, 경영은 엉망이고 가족과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특히 언니 클레어와의 비교, 아버지와 새엄마(=고모)의 어색한 거리, 이별과 섹스, 그리고 절친 ‘부(Boo)’의 죽음이 삶을 침몰시키는 무게로 내려앉는다. 플리백의 농담은 늘 한 박자 빠른데, 그 속도는 생각을 멈추게 해주는 마취제다. 전반부의 가볍고 엉뚱한 해프닝은 후반부, 부의 사고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며 통째로 뒤집힌다. 웃음의 포장지를 벗긴 자리엔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있다.

시즌 2는 한 끼의 재난적인 가족 디너로 포문을 연다. 그 자리에서 플리백은 ‘신부(The Priest)’를 만난다. 그에게 끌리는 마음은 사랑이자 구원 욕망이다. 기도와 욕망, 신과 인간—도저히 함께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단어들을 이 드라마는 가볍고 정확한 농담으로 한 테이블에 앉힌다. 플리백은 이번엔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도망 대신 정면 돌파—카메라를 향한 농담도 점점 줄고, 그는 우리에게서 눈을 떼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마지막 정류장 앞, 신부는 “나는 사랑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을 향한다. 플리백은 헤어진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를 떠난다. 엔딩에서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젓고, 혼자 걸어간다. 치유란 누군가가 와서 구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떠나 스스로 걷는 일임을 담담히 보여주는 결말이다.

주요 등장인물 & 관계

플리백

이름 없는 화자. 농담섹슈얼리티죄책감으로 구성된 불안정한 자아.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농담의 빈도가 늘어난다—정신적 거리두기의 방식이다. 절친 부의 죽음 이후 생긴 구멍을 거리낌 없는 섹스, 충동적 선택, 빠른 대답으로 메운다. 하지만 진실의 순간엔 누구보다 정직하다.

클레어

언니. 완벽주의야심불안. 직장에서 성공했지만 삶은 삐걱거린다. 자매는 서로에게 열등감과 질투, 보호본능을 동시에 느낀다. 시즌 2의 공항 장면은 두 사람의 사랑 고백이자 우정의 리부트다.

아버지 & 새엄마(고모)

감정 표현에 서툰 아버지와 예술가인 고모(나중의 새엄마). 가부장적 침묵과 예술적 자기애가 뒤엉켜 가족의 공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가족의 언어다—사과 대신 전시회 초대장, 포옹 대신 깜빡이는 눈빛.

부(Boo)

죽은 절친. 선의연대. 회상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플리백의 도덕적 기준점이자 죄책의 원천이다. 부를 둘러싼 비밀은 시즌 1의 핵폭탄이다.

신부(The Priest)

시즌 2의 상대. 신앙유머불안. 그는 플리백의 4차벽을 처음으로 인식하는 인물이다(“방금 누구랑 얘기했어?”). 이 짧은 질문 하나로, 드라마는 관객=신이라는 대담한 은유까지 가 닿는다.

관계의 핵심: 플리백은 ‘농담’으로 관계를 거리두고, ‘응시’로 관계를 회복한다. 시즌 2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는 우리를 덜 보며, 상대를 더 본다. 이것이 성장이다.

 

 

연출 언어: 4차벽·리액션·타이밍

플리백의 가장 큰 혁신은 4차벽 브레이킹을 ‘서사 기능’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많은 작품이 가끔 농담처럼 벽을 깨지만, 플리백은 호흡 단위로 사용한다. 대사 중간의 반 박자 시선,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한 급박한 미소, 불편한 진실이 나올 때의 초저속 눈 깜박임. 이 짧은 신호들이 인물의 정서 계기판이 된다.

  • 편집의 타이밍: 펀치라인 직후 제로-비트 정지—그리고 컷. 웃음의 잔향을 확장한다.
  • 사운드: 잔잔한 현악과 침묵의 대비. 웃음 뒤에 드리워진 공허를 소리 없음으로 체감하게 한다.
  • 미장센: 카페의 난장, 욕실의 거울, 버스 정류장의 비어 있는 의자—소품은 감정의 지형도다.

무엇보다도, 신부가 4차벽을 인지하는 순간 연출은 관객의 위치를 흔든다. 우리는 더 이상 안전한 관객석이 아니다. 목격자가 된다—그리고 목격에는 책임이 따른다.

핵심 주제: 애도·욕망·죄책·사랑

애도: 부의 죽음은 모든 장면의 바닥에 깔린 저주파다. 플리백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그 빈자리를 듣는다. 이 드라마는 애도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애도하는 방식을 차곡차곡 보여준다—농담하기, 회피하기, 망치기, 울기, 말하기, 보내주기.

욕망: 플리백의 욕망은 삶을 느끼고 싶다는 신호다. 섹스는 종종 자기파괴와 연결되지만, 동시에 접촉과 인정의 언어이기도 하다. 시즌 2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욕망을 정직하게 바라본다—그 대상이 금지된 사람이라 해도.

죄책: 유머는 죄책을 덜어주는 마취제다. 하지만 마취는 치료가 아니다. 시즌 1의 마지막 고백은 마취를 끄는 행위다. 고백 이후 찾아오는 침묵은 벌이 아니라 치유의 전실이다.

사랑: 로맨스만이 아니다. 자매애, 우정,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화해. 시즌 2 엔딩에서 카메라를 떠나는 제스처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사랑의 출발선이다. “괜찮아. 이제 너 없이도 걸을 수 있어.”

기억에 남는 장면 해설(스포일러 최소)

  • 재난적 가족 디너: 모두가 진실을 피하는 자리. 테이블은 전쟁터, 와인은 도피, 농담은 방패. 이 장면에서 관계의 역학과 각자의 결핍이 단번에 드러난다.
  • 고모의 전시회: 불편함을 예술로 포장하는 세계. 플리백은 웃음으로 대응하지만, 그림 앞 침묵이 더 많은 걸 말한다.
  • 고백의 밤: 카메라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의 얼굴만 본다. 연출은 관객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사랑은 사이에만 흐르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 엔딩의 손짓: 마지막 인사와 고개 젓기. 작별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방식임을 알려준다.

추천 이유

플리백은 드라마가 어떻게 코미디상실을 말하고, 고백체치유를 수행하는지 보여주는 교본이다. 4차벽 브레이킹은 gimmick이 아니라, 트라우마와 친밀성의 문법이다. 짧은 러닝타임 속에 농담과 침묵, 눈빛과 컷 타이밍을 치밀하게 배치해 감정의 곡선을 만들어낸다. 끝났을 때, 우리는 조금 더 가벼워지거나—혹은 조금 더 정직해진다.

시청 팁

  • 표정-컷-리액션의 삼박자를 따라가면 대사의 이면(진짜 대화)이 보인다.
  • 시즌 1은 고백까지의 여정, 시즌 2는 고백 이후의 감당이다. 톤의 차이를 즐겨볼 것.
  • 마지막의 작별 제스처를 자기애의 회복으로 읽으면 엔딩의 의미가 풍성해진다.
  • 짧은 러닝타임이니 두 번 보기를 추천. 두 번째엔 농담보다 침묵이 크게 들린다.
키워드: 플리백 리뷰, Fleabag 분석, 4차벽 브레이킹, 여성 서사, 애도와 사랑, 피비 월러-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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