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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디스클레이머 줄거리 기억 조작, 폭로, 복수의 서사

by snile 202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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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디스클레이머(Disclaimer)》는 아카데미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손에서 탄생한 심리 스릴러입니다. 케이트 블란쳇, 케빈 클라인, 코디 스밋 맥피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단순한 폭로극이 아닌,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 과거의 도피와 직면에 관한 섬세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고밀도 드라마입니다.

원작은 2015년 출간된 레네 나이트의 동명 소설 『Disclaimer』로, 드라마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억의 왜곡, 문학을 통한 복수, 자기 고백의 파괴성을 정교한 심리 서사로 풀어냅니다.

 

책 속의 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다 (기억 조작)

주인공 캐서린 레이번스로프트(케이트 블란쳇)는 런던 언론계에서 명망을 쌓은 저명한 언론 윤리 감시 기관의 간부입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 과거엔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진보적 작업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현재는 고급 저택에 살며 기득권의 일원으로 편입된 인물입니다.

캐서린은 '진실은 드러나야 한다'는 직업적 신념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한 새 집에서 발견한 한 권의 자비출판 책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듭니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인물의 이름은 바꾸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캐서린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사건의 배경, 등장인물의 말투와 상황은 모두 20여 년 전 스페인에서 자신이 겪었던 사건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 당시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마주친 한 가족과의 인연, 그리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녀는 당시 그 모든 것을 묻고 현재의 삶을 쌓아올려 왔지만, 이 책은 마치 모든 감춰진 진실을 끄집어내는 고해성사처럼 그녀를 몰아세웁니다. 과거에 벌어진 일들을 타인이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다시 기록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에 그녀는 공포와 혼란을 느낍니다.

모든 진실은 드러난다: 출판된 복수 (폭로)

 

이 책의 저자는 스티븐 브리게이(케빈 클라인). 그는 과거 스페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가족의 아들로, 어린 시절 캐서린과의 접점을 겪으며 어머니의 죽음을 직면했던 인물입니다. 스티븐은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잊지 않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이라는 매개체로 복수를 준비해 온 것입니다.

스티븐은 단순히 폭로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캐서린 스스로가 자신을 직면하고 무너지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는 책을 캐서린의 손에 쥐여줌으로써, 조용하지만 강력한 심리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립니다.

캐서린은 책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자책과 분노, 두려움과 억울함 사이를 오가고, 점차 자신이 만들어온 정체성과 현재의 삶이 무너지는 감각에 시달립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책이 드러내는 과거의 그림자로 인해 서서히 파열음을 내기 시작합니다.

한편, 스티븐은 캐서린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고, 심리적으로 압박합니다. 그 과정에서 캐서린의 아들(코디 스밋 맥피 분)까지 이 사건에 말려들게 되며, 복수는 점차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가족 전체의 해체로 번지게 됩니다.

기억과 진실, 그리고 복수의 윤리 (복수의 서사)

《디스클레이머》는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 구도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억이란 얼마나 주관적이고 유동적인가, 그리고 진실을 고백하지 않고 묻어두는 일이 과연 윤리적인가를 계속해서 묻습니다.

캐서린은 당시 상황을 "어쩔 수 없었던 실수"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해 왔지만, 스티븐에게는 그 실수가 곧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둘의 기억은 서로 다르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릴 수 없는 회색지대의 감정선이 시청자에게 불편한 긴장을 안깁니다.

스티븐은 살인을 하거나 폭력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캐서린이 스스로 자기모순을 깨닫고 붕괴하게 만드는 ‘지적 복수자’의 입장에 섭니다. 그의 복수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이며, 이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결국 캐서린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할 수 없게 되며, 자기 연민, 후회, 공포, 고립감 속에서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녀가 쌓아온 성공, 윤리적 권위, 사회적 신분은 모두 거짓 기억의 기반 위에 세워졌음이 드러납니다.

《디스클레이머》는 기억, 회피, 복수라는 익숙한 테마를 가져오지만, 이를 ‘책’이라는 장치로 풀어낸 독창적인 구조를 통해 더욱 서늘하게 완성시킵니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기억을 공유하는 책임과 그 왜곡이 불러오는 비극을 사유하게 만듭니다.

‘디스클레이머’란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문장이지만, 이 작품에선 기억과 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인간의 심리적 기제를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단지 이름만 바꿨습니다.” 이 문장은 결국, 누구나 한 번쯤은 외면한 진실과 직면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디스클레이머》는 현대 사회에서 진실은 언제 드러나야 하는가, 그리고 기억은 누구의 것이며, 복수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던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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